2009년 7월 1일 수요일

농촌의 미래는 농촌유학이 맡는다

농촌의 미래는 농촌유학이 맡는다.

 

한드미 유학센터(http://cafe.daum.net/handemy)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농촌유학이란 성장기에있는 초.중학생들이 농.산촌의 농가 혹은 농촌유학지원센터에서 일정기간 머물면서 그 지역의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 교육을 말한다. 방과 후에는 지역 아이들과 어울려 농, 산촌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연의 여유로움을 직접 체험할수 있다.

 

정문찬 대표는 "당초 예상으로는 농촌에 향수를 가지고 있거나,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조금은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자녀들이 대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해를 거듭할수록 층이 넓어져 일반 가정의 자녀들이 농촌유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며 "농촌유학을 통해 마을에 도시 아이들이 들어와 왁자지껄하고,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일자리가 창출돼 마을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고 자랑했다.

 

 

1년 코스로 진행되는 농촌유학체험은 2007년부터 3년째 이어오고 있다. 농촌유학체험을 하기 위한 농촌유학캠프를 1주일간 운영해 거기에서 적응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12월 말에 접수를 받아 유학생으로 선발한다. 12명으로 시작해서, 지난해에 16명, 올해는 현재 20명의 학생들이 한드미마을 유학센터에서 함께 생활하고 학교를 다니며 산골아이들로 자라나고 있다.


 

정문찬 대표는 "농촌유학의 가장 큰 목적은 폐교를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농촌을 살린다''돌아오는 농촌을 만든다'하면서 많은 돈을 투입했지만 농촌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돼 앞으로 20년 후엔 누가 남아 있을지 의문" 이라며 "농촌 학교는 현재 폐교됐거나, 폐교가 진행되고 있거나, 합병하고 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는 농촌에 살고 싶어도 학업 때문에 망설이는데 이것이 바로 농촌 학교를 지켜야하는 이유" 라고 설명했다.

국가의 미래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있듯이, 농촌의 미래 또한 어린이들의 몫이라는 얘기다.

 

<출처 : 디지털농업 7월호(www.nongmin.com/dmagazine)>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산촌유학생들 학교는 어떨까?

한드미 농촌유학(한국형 산촌유학)생들은 어떤 학교를 다닐까요?


귀여운 막내들 1학년

2학년

3학년
산촌유학

4학년
산촌유학

5학년
산촌유학

6학년
산촌유학

산촌유학생들이 다니는 대곡분교는 한학년에 한반씩뿐인 작은분교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가까이에서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을 한다고 해요
도시에서는 사람이 많아서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기 힘들고 발표도 힘들지만 대곡분교에서 만큼은 모든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발표를 한답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공부하는 산촌유학생들, 공부에 재미도 쑥쑥 늘어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출처 : 한드미 농촌유학(한국형 산촌유학)카페(http://cafe.daum.net/handemy)>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토마토에 왠 살모넬라균???

토마토에 살모넬라균이????


농촌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의 얼굴은 파래진다.” 라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환자 수가 줄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될 만큼 토마토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토마토는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피로 회복에도 좋은 데다 지방 분해 효과까지 두루 갖춘 손꼽히는 웰빙 음식이다.

빨갛고 앙증 맞은 외모에 각종 몸에 좋은 성분으로 속까지 꽉 들어찬 토마토가 요즈음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토마토를 먹고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사례가 미국 전역에서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중순 처음으로 감염 신고가 접수된 후 지난 12일까지 총 228건의 감염 사례가 발생했으며 최근에는 토마토 요리를 먹은 67세 남성이 숨지는 일까지 발생해 미국 전역이 토마토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토마토의 근원지를 찾으려 노력 중이나 아직 확실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토마토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대형 유통마트에서는 토마토 취급을 중지하고 있으며 토마토 생산농가에는 출하하지 못 한 토마토들이 쌓여만 가는 실정이다. 보건 당국이 살모넬라균의 진원지를 멕시코 산 토마토로 의심해 경고 발령을 내림에 따라 교역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살모넬라 식중독이라 하면 달걀이나 식육제품부터 떠오른다. 열에 약한 균이라(62~65℃에서 30분 동안 가열하면 사멸된다.) 주로 덜 익힌 고기나 가열한 뒤에 살모넬라균에 노출된 식육제품에서 발생한다. 이런 살모넬라균이 어쩌다 토마토 같은 채소류에 오염돼 식중독을 일으키고 있을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재배하는 과정에서 다른 동물의 분변에 포함됐던 살모넬라균이 토마토에 오염됐거나 수확 및 포장 과정에서 감염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또 토마토가 익히지 않고 먹는 식품이다 보니 다른 식육 제품과 함께 칼로 써는 과정에서 식칼이나 도마로부터 감염됐으리라는 추측이다.

수입해서 먹는 농산물도 많고 쇠고기, 닭고기 등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성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던 터라 미국의 토마토 소동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문제가 되는 토마토 품종(플럼토마토, 로마토마토, 스테이크토마토 3종이다.)은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품종이며 식약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으로부터 토마토를 수입한 일이 없다고 한다. 케첩과 같은 토마토 가공품들은 수입되고 있지만 이미 충분한 가열을 거친 이후라 감염원인이 되지 못 한다. 미국에서는 밭에서 주로 재배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토마토는 대부분 시설 안에서 재배하므로 동물의 배설물로 인해 토마토가 균에 오염될 확률도 희박하다.

그럼에도 자꾸만 의심의 눈초리로 토마토를 바라보게 된다면 토마토를 익혀 먹어보자. 토마토는 익혀서 먹을 때 흡수도 더 잘 되고 라이코펜 같이 암을 예방하는 성분도 증가한다. 평소엔 세포벽에 단단히 잘 흡수되지 못하던 성분들이 조리 과정에서 세포벽이 파괴되고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포장이나 수송 단계에서 오염됐을 지도 모르는 세균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물로 여러 번 씻어서 먹고 식육이나 어패류 요리에 사용했던 칼이나 도마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살모넬라균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아무리 지병이던 암이 사망 원인이라지만 토마토를 먹다 사망했다는 기사에 놀란 가슴 달랠 길이 없었는데 국내 토마토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내심 든든하다. 여름 볕에 발갛게 달아오른 토마토 엉덩이들이 통통하던데 오늘은 우아하게 올리브유에 토마토나 볶아봐야겠다.

<출처 : 농림수산식품부(http://www.mifaff.go.kr)>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식초로 세균없는 깨끗한 채소를 먹는다?

0. 6-1% 식초수에 10-15분간 침지하면 안심


농촌진흥청(http://www.rda.go.kr)은 건강식품으로 주목받는 새싹채소 등 날것으로 섭취하는 신선채소와 샐러드 원료에 붙어있는 세균을 식초 희석액 세척으로 살균함과 동시에 저온보관으로 증식을 억제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새싹채소는 재배기간이 짧고 병충해를 입기 전에 수확하므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재배가 쉽지만 가열 등 살균공정 도입이 어렵고 발아에 필요한 고습, 온난한 조건으로 식중독 미생물도 혼입될 수 있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살균소독 세척제인 염소를 꺼리는데, 가정용 식초로 10~16배 희석액을 만들어 10~15분 침지 후 수돗물에 헹굼으로써 브로콜리 싹 등에 붙어있는 일반세균, 대장균군, 대장균 세균수가 1/10~1/100로 저하되어 염소수와 동등한 살균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판되는 식초는 「산도 6~7%」등으로 표시되고 있는데 이는 100㎖에 초산이 6~7g 들어가 있다는 의미”로 이를 확인하고 가급적 0.6~1% 농도로 희석하여 사용하는 것이 살균효과를 유지하면서 식초의 잔류 냄새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번 조제한 식초 희석액은 3회 이상 재사용하여도 살균력에 차이를 보이지 않아 전용 용기에 조제하여 사용함으로써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농촌진흥청 채소과 최지원 연구사는 가열처리 할 수 없는 신선채소에 완벽한 살균을 기대할 수 있는 단일 수단은 없으므로 품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의 약하면서 유효한 제어법을 복수 조합하는 허들테크놀로지 기술로 가정에서 안전하게 섭취할 것을 권장했다.


<출처 : 농업진흥청(http://www.rda.go.kr)>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고산 산촌유학 캠프를 실시한다네요?

[2009여름' 시골살이 산촌유학체험캠프 안내]


고산산촌유학센터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한 산촌유학체험캠프가 진행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골살이를 통해 예비산촌유학생들이 헌신적인 교사들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며, 생태적인 생활양식과 자립심을 기를 수 있는 교육과정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맞는 요가와 명상을 통해 마음수련 및 영성교육도 진행합니다. 따라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태적 감수성을 계발하며 각자의 삶을 두려움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산촌유학체험 한마당 일정》


1, 7/26(일)~7/31(금) 5박6일 (1차)  

2. 8/02(일)~8/07(금) 5박6일 (2차)

3. 8/09(일)~8/14(금) 5박6일 (3차)  

4. 8/16(일)~8/21(금) 5박6일 (4차)  


~~~~~~~~~~~~~~~~~~~~~~~~~~~~~~~~~~~~~~~~~~·


※ 참가비 안내 ※


→ 1회차 참가 : 32만원 - 5박6일

→ 2주간 참가 : 65만원 - 12박13일

   [7/26(일)~8/07(금), 8/02(일)~8/14(금), 8/09(일)~8/21(금)]

→ 3주간 참가 : 99만원 - 19박20일

   [7/26(일)~8/14(금), 8/02(일)~8/21(금)]

→ 4주간 참가 : 120만 - 26박27일

   [7/26(일)~8/21(금)]


※ 모집방식 : 입금자 선착순 마감 (선납입자 우선순위)

※ 고산산촌유학센타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양야리 122-3  

☎ 안내 및 문의는 063-262-3336, 010-9484-3336, degan@hanmail.net

● 계좌번호 : 농협 356-0064-4893-83  예금주 : 지아영

♥ 다음카페 주소는 http://cafe.daum.net/Confucian 입니다.


(세부일정은 조만간 다음카페에 공지해 올립니다)


♤♤♤♤♤♤♤♤♤♤♤♤♤♤♤♤♤♤♤♤♤♤♤♤♤♤♤♤♤♤♤♤♤♤♤


《세부 안내 사항》


※ 프로그램 내용 : 어린이요가, 어린이명상, 흙피리, 황토방체험, 캠프파이어,천연비누만들기,  미술치료, 음악치료, 요가와 명상, 숲체험(숲해설), 야영생활, 계곡탐사, 물놀이, 각종 음식만들기, 농사체험, 지역탐방, 자전거하이킹, 탁구 축구 등 공놀이, 환경강좌, 비폭력대화법 강좌, 산행, 어린이 창작놀이,보드게임대회 등 (프로그램 내용은 추후에 상세히 공지해 올릴 예정입니다)


※ 산촌유학 체험캠프자 대상 교육내용


 - 다양한 자연체험      - 자립적인 생활 지도

 - 자급자족적 삶의 양식지도 (의․식․주․자연치유의학․대안교육 등)

 - 영양이 충분히 갖추어진 유기농 채식식사 (체질개선 및 각종 질병치유)

- 요가 및 명상 지도 (마음수련 및 영성교육)




※ 기대효과


 ‘산촌유학체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단기간의 시골생활을 체험하며,‘영혼이 따뜻했던 나날들’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기를 기대합니다. 자연 속에서 보냈던 추억은 평생 한 아이의 가슴속에 남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대로 꾸릴 수 있는 자립적인 사람으로 사는 데 보탬이 될 것입니다.


※ 시설현황


 수련원 강당 50평, 수련원 방 2개, 4평의 정자, 화장실 4칸(실내), 화장실 야외 2칸(생태뒷간 건립함), 별관 방 3개, 별관 부속 화장실 2칸, 샤워실 실내 2칸, 샤워실 별관 1칸(4평), 황토방 1칸 (4평), 논밭 2천여평, 과수(복숭아, 매실, 감, 오디, 밤, 대추, 등등) 다수 부지내 소유.


------- 아래의 참가신청서를 복사하여 이메일로 접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가신청서>

캠프참가신청기간 :      주차         년    월    일-      월    일


성 명(한글) :               주민번호 ;(여행자보험때문에 필요해요)


학부모 성명 :                 직업 :


학교명 :            학 년 반 ;            


주 소 : (우편번호)


연락처; (집?직장)         (손전화)          (e-mail)                              


질병유무 :


참가동기(계기) :

 

산촌유학체험학습 신청계기 : 1. 인터넷 고산산촌유학 다음카페  2.잡지 및 언론  3.지인소개  4.다른인터넷에서 보고

                                      5.기타(                             )

다른 캠프 참가 여부 : 있음( 어떤 캠프?                )

                            없음



  - 상기 본인은 2009년 여름‘ 고산산촌유학체험 한마당에 참가를 신청합니다.


                     2009년  월   일     성명 :             인

--------------------------------------------------------------



【2009년 여름캠프의 특징과 프로그램 일과표】



본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골살이 여름캠프는 일반 자연체험캠프와 다릅니다.

비교하기를 사양합니다.

찾아온 아이들에게 낮은 차원의 무한만족을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지향하지 않습니다.

맘껏 뛰놀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자연캠프이면서,

심성을 치유하고 계발해 나가는 영성캠프입니다.

아이들 안에 잠재해 있는 깊은 내면의 세계를 집중해서 바라볼 예정입니다.

잠든 정신을 일깨우고, 따뜻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여름 한철을 보내볼까 합니다.

특히, 본 센터에서 처음 선보이는 어린이 마음공부 과정과 영성훈련 및 치유프로그램은 기대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지도교사인 칫다다지께서 함께하실 예정입니다.


2009년 여름캠프는 깊은 호흡으로 자연과 영성을 풍성히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에겐 뛰어노는 것도 명상의 상태이며, 행복 그 자체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상적 생활이 모두 수행의 과정이며,

제 인생의 목적을 찾아가는 노력이 되도록 도우려 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일상과 놀이, 그리고 교육을 분리하지 않고 질적향상을 도모합니다.

이번 여름캠프는 에너지 발산과 수렴의 시간을 왕복합니다.

낮에는 물놀이와 특별활동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에너지 발산의 시간이며,

새벽과 저녁이후에는 영성에 바탕한 놀이와 치유프로그램으로 정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 영성강화를 위한 놀이체험 프로그램 내용 ~~~~

(에너지 발산 프로그램은 추후에 공지해 올리겠습니다)



~~~~ 고산산촌유학센타 여름캠프 하루하루~~~~



- 06:30 ~ 07:00 : 기상 및 씻기, 자기 잠자리 정리 및 청소


~ 07:00 ~ 07:30 : 요가 및 아침 명상 (숲산책)


~ 07:30 ~ 08:00 : 수행


~ 08:00 ~ 09:00 : 음식만들기 및 아침식사


~ 10:00 ~ 12:30 : 각종 체험행사 및 놀이


~ 12:30 ~ 13:30 : 점심식사


~ 13:30 ~ 14:30 : 낮 잠자는 시간(이완체험-음악치료) 및 자유시간


~ 14:30 ~ 19:00 : 자연에서 놀자, 체험하자  / 마음나누기/ 수행실습


~ 19:00 ~ 20:00 : 저녁식사


~ 20:00 ~ 21:00 : 수련 및 학습 (에너지 힐링, 에너지 이완과 수렴, 탄트릭수행, 놀이와 미술치료 등)


 ~21:00 ~ 22:00 : 일기쓰기와 마음나눔 및 하루정리명상


(위 일정은 상황 및 행사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출처 : 고산산촌유학카페(http://cafe.daum.net/Confucian)>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도심속 농촌체험"녹색무지개 만들기"

농촌진흥청, 대국민 도농교류 농업·농촌문화 캠페인 개최 


농촌진흥청(http://www.rda.go.kr)은 6월 13
일부터 14일까지 2일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원에서 ‘대국민 도농교류 농업·농촌 문화캠페인’을 통해 도시민들이 농촌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체험과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체험마당을 준비하였다.

이번 캠페인은 도시민과 농촌체험마을이 한자리에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여름휴가를 농촌에서 보내기’라는 슬로건 아래 농촌진흥청이 조성한 농촌전통테마마을 및 농촌교육농장 중 18개의 우수한 체험마을이 전시회에 참여하여 각 마을의 볼거리, 먹을거리, 체험거리를 알릴 계획이다.

개막식6월 13일 11시30분에 인사동 홍보관 앞에서 거행할 예정이며, 축사 및 축하공연과 함께 비눗방울 과학쇼, 포토존, 마을별 퀴즈쇼 등 부대행사와, 사과떡 케익, 솟대만들기, 나무곤충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마을전시 분야 외에도 미래 농업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빌딩형 농장, 인삼수경재배, 에그로매스타운 등을 비롯하여 농촌진흥청에서 연구한 성과 중 도시민의 관심을 끌만한 다양한 기술이 전시되며, 발효생햄, 치즈, 기능성요구르트, 전통주 등을 시식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아울러 본 행사의 사전행사로 6월 8일부터 14일까지 종로구 안국역 역사에서 우리 농촌의 정취가 살아있는 농촌어메니티 사진 전시회 및 농촌전통테마마을을 알리는 행사도 가진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 관계관은 “이번 캠페인은 도시민들이 정감 어린 농촌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도시와 농촌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출처 : 농촌진흥청(http://www.rda.go.kr)>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뜻 이어 생태환경 진행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후 봉하마을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봉하마을은 아직도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추모열기는 여전하다.또한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꿈꿨던 생태마을과 친환경농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의 고향이자 퇴임 후 희망을 걸었던 봉하마을의 미래는…"


친환경 생태농업이라는 ‘희망’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마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마을 앞 들녘에서 김정호 비서관을 만났다. 참여정부 집권 초기부터 기록담당비서관을 지낸 그는 현재 영농법인 ㈜봉하의 대표이사다. 연녹색 셔츠에 작업복 바지.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포크레인으로 땅에 고무다라이를 파묻고 있다. “수련을 심으려고요. 전남 함평군에서 받은 것인데, 나중에는 자그만 화분에 담아 방문객들에게 기념품이 될 수 있도록….” 그는 기자를 인근의 농수로로 안내했다. “저게 노랑어리연꽃입니다. 저건 심은 게 아니라 자생군락이에요. 옆에 마름도 그렇지만 봉하마을의 자연은 수생식물의 보고입니다.” 마을 자랑이다.

김정호 비서관이 봉하마을 앞에 조성된 체험형 주말농장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1주일 손을 놓고 있던 봉하마을 농민들은 모내기 준비에 한창이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파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환경·품질을 보증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봉하오리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난해는 2만3600평 농사를 지어 50t의 쌀이 나왔습니다. 올해는 24만 평을 지어 500t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묘목과 함께 오리새끼들이 자리고 있다. 논두렁마다 놓여 있는 노란 우리는 현재는 비어 있다. 농사가 본격화되면 오리들은 이곳에서 밤을 난다. 화학비료 대신 오리들이 잡초와 해충을 잡아준다. 친환경생태 농업에서 화학비료 대신 들어가는 ‘농약’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김 비서관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 마을 입구의 ‘미생물 배양센터’ 비닐하우스를 방문했다. 비닐하우스에는 장독이 가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인산칼륨 비료 대신 현미식초와 쇠뼈 태운 것을 발효시켜 놓는다. 쇠뼈 대신 굴이나 계란껍질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히려 화학비료보다 싸게 먹힌다고 한다. 한 노인이 왔다. 생태농법 작목반 소속 농민이다. 김 비서관은 농민 개인별로 처방된 ‘가이드’에 따라 생태농약을 만들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노인을 배웅한다. 봉하마을에 오기 전, 한 번도 농사를 한 적 없던 김 비서관은 벌써 농부가 다 됐다. 김 비서관은 광역 생태농약 살포기, 친환경생태농법(포트농법) 전용 이양기 등을 보여줬다. 들판을 가리키며 김 비서관은 말했다. “저기가 봉하 체험형 주말농장입니다. 벌써 예약이 다 되었어요. (노 전 대통령이) 이걸 직접 보지 못하셨어요. 기자들이 밖에서 24시간 카메라를 들고 지키고 있으니 나와 보시지도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사저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생태연못’이다. 위쪽엔 물이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원래 이곳에 우물이 있었어요. 주말체험을 한 아이들이 이곳에서 손발을 씻고 정자에서 쉴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정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 호화생일파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사진시리즈에 등장하는 곳이다. 물론 ‘호화파티’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노 전 대통령은 평상복 차림의 마을 주민들과 파리바게트 케이크를 두고 집들이 겸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김 비서관의 말에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이 나타난다. “생각해보니 노 전 대통령이 아주 안 보신 건 아니네요. 돌아가시기 3주 전이던가, 밤중에 연락이 와서 죽 둘러봤어요.” 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해 심야에 마실 나간 것이다. 원래 비서관에겐 칭찬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날 노 전 대통령은 등을 두드리며 “정말 좋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냐”고 덧붙였다. 

 
봉하마을의 밤이 깊었다. 논 쪽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 소리는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다. 부엉이바위 쪽은 아직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경찰의 서치라이트가 부엉이바위 인근 숲 속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낮에 설치한 전등이 줄지어 정토원 쪽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는 환하게 웃는 고인의 초상화가 걸개그림으로 걸려 있다. 

< 출처 : 경향신문(http://weekly.khan.co.kr)>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생태학교에 간 산촌유학생들

생태학교 노리뫼를 찾은 한드미 산촌유학생들


6월 10일 한드미 농촌유학(한국형 산촌유학)생들은 생태학교 노리뫼를 찾았다.
이날 노리뫼에서 산촌유학생들은 응급처치 및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산촌유학,농촌유학
▲ 실습에 앞서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

산촌유학,농촌유학
▲ 발표하며 웃고있는모습

산촌유학,농촌유학
▲ 먼저 해보겠다고 실습모델이 모습

산촌유학,농촌유학
▲ 심폐소생술을 실습하는모습

웃으며 재미있게 실습해보았던 이시간들이 훗날 응급상황이 생겼을때 침착하게 대처해서 사람을 구할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서울아이들이 군대를 가다



6월 9일 서울 경희초등학교(http://www.kyunghee.es.kr)아이들은 토고미마을을 찾은 아이들은(http://togomi.invil.org) 인근 정보통신대대에서 병영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이날 경희초등학교(http://www.kyunghee.es.kr)아이들은 진지하게 안보교육도 받고, 총기 교육 및 체험을 하면서 장난도치고, 군용트럭에 타서 다른 느낌을 느껴보기도 하고, 아무나 먹을수 없는 군대안의 음식들을 먹어보면서 색다른경험들을 많이 해보았다고 한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것들을 직접 체험하게 되니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시절이 지나고 아이들이 훗날 군대를 가게 된다면 어린시절 토고미마을(http://togomi.invil.org)에서 병영체험을 갔던 생각이 많이 나지않을까 하는생각이다.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봉하마을에 추모벽화 그릴꺼에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벽화 작업은 고인에 대한 추모도 있지만 고인의 정신을 희망적으로 계승시키는 데 작품의 방향성을 둘 것"

▲ 한 시골버스 정류장을 노란색 두건을 쓴 청년들이 둘러보고 있다.
ⓒ 이주빈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 "잘 그린 그림이란..."
 
어려서부터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러웠다. 둔한 색감은 봄의 색깔을 우려내는 것도 힘들었고, 서툰 붓질은 둥근 원 하나를 따라가지 못했다. 연습을 열심히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숙제로 내준 수채화 한 장을 그리기 위해 꼬박 일주일, 날을 새다시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더 커져만 갈 뿐이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도화지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그리는 그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임을.
 
도화지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 사람 마음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이를 만나기는 힘들다. 그가 화단의 원로화백이든 풋내 나는 수련생이든 말이다. 하도 여기저기서 고수(高手)인양 제절로 티내는 이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일 광주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서 만난 청년들은 흔한 말로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았다. 어쩌면 또 그것은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청소부처럼 작은 콘크리트 건조물의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그득한 거미줄을 걷어냈다. 다음엔 측량 기사처럼 하얀 종이를 펼치더니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러고는 페인트공처럼 콘크리트 벽면에 살구색이며 하늘색 칠을 했다. 이윽고 설계사처럼 그 위에 연필로 슥삭슥삭 뭔가를 그려 넣었다. 그러더니 청년들은 지나가는 아이들까지 합세시켜 연필이 지나간 선 안으로 면을 만들어내고, 그림을 채워갔다.
 
한 시골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물감과 붓을 든 청년들
 
  ▲ 청년들은 청소를 하는가 싶더니 화사한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다.
ⓒ 이주빈
 좋은세상만들기
  ▲ 점심이 지나자 허름했던 마을버스 정류장이 화사해지기 시작했다.
ⓒ 이주빈
 좋은세상만들기
 
이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들은 '좋은세상 만들기(대표 정수)' 소속 회원이라고 했다. 열린 미술을 지향하며 지난 2002년에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는 무료로 시골버스 정류장과 시골학교 담 등에 벽화를 그려왔다. 이들이 그동안 무료로 그려온 벽화만 100여 작품에 이른다.
 
이날도 이들은 광주라고는 하지만 자연마을에 가까운 농막마을 버스정류장에 무료벽화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뙤약볕에 붉게 익어가는 그들의 볼이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모두들 쉬는 휴일에, 자신들이 각자 1만5천 원씩을 갹출해 물감을 사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막마을 버스정류장 벽화그리기에 참여한 이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좋은세상 만들기 대표인 정수(34)씨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지금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재(34)씨는 청소용역사업을 하고 있는데 벽화 그릴 시설물 청소나 마을청소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허진(27)씨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지금은 광주민족미술인협회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오은영(26)씨는 대학에서는 판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쇼핑몰을 운영하며 벽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강(25)씨는 한 시골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벽화작업에 그 누구보다 열성이다.
 
김종원(29)씨는 현재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꿈은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 김원(34)씨는 고등학교 미술교사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영인(28)씨는 전남대 학생이자 한 공익광고에 출연한 광고모델이기도 하다. 정일영(26)씨는 유통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아예 이 단체의 아트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오은영씨는 "판화작업을 할 때는 내 감정 위주로 작업을 하고 또 내 작업 나름대로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작업하는 것도 혼자 작업하는 것 못지않게 즐겁다"며 소감을 밝힌다.
 
김종원씨는 "평소에 벽화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특히 마을버스 정류장에 벽화작업을 할 때는 작지만 도시와 농촌 간에 교류가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고 한다.      
 
허진씨는 "대개의 미술작품은 갤러리에 와서 봐야 하는데 내 손길이 닿은 작품 하나가 시골 한가운데 있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벽화작업은 다른 작업과는 달리 여러 사람의 다양성이 녹아 있고 또 다른 작품에 비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좋다"고 작업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의 작업을 하루종일 지켜본 농목마을 전 부녀회장 유성복(53)씨는 시원한 수박을 내오며 "다른 동네 버스정류장이 예쁘게 꾸며져 있는 걸 보고 괜히 부러워만 했었는데 이렇게 우리 마을까지 와서 벽화작업을 해주니 너무나 기쁘다"며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밭일을 갔다오다 들른 임이순(68) 할머니는 "자기 동네도 아닌데 남의 동네까지 와서 이 더위에 고생을 해주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좋다"며 "시원한 물이라도 갖다줘야 할 것인디…"하고 흐린 말끝으로 진한 고마움을 전했다. 
 
청년들이 봉하마을로 추모벽화 작업하러 가는 까닭은....
 
  ▲ '좋은세상만들기' 회원들이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해서 이쁘게 새단장을 시킨 광주 농막마을 버스정류장.
ⓒ 이주빈 좋은세상만들기

  ▲ 농막마을 버스정류장 무료벽화작업을 마친 '좋은세상만들기' 회원들이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 이주빈 좋은세상만들기
 
 
한편 이들은 조만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위패가 있는 경남 봉하마을에 가서 추모벽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이미 지난 5월 30일 봉하마을로 답사를 다녀왔다.
 
봉하마을 추모벽화 작업을 제안한 허씨는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내 삶에만 집중했었는데 노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고 나서 그분이 가진 생각과 가치관, 사상에 대해서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에 많이 후회스러웠다"며 "이제라도 그분의 뜻을 공부하고 이어갈 수 있는 방법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이고 벽화여서 이를 통해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수 대표는 "봉하마을 작업은 현재 2박 3일로 예정하고 있으며 광주전남지역에서 약 25명의 자원봉사단을 꾸려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벽화 작업은 고인에 대한 추모도 있지만 고인의 정신을 희망적으로 계승시키는 데 작품의 방향성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전남지역에서 마을벽화 했을 때처럼 작은 규모가 아니어서 지금 물감 등 재료비용, 교통수단, 현장에서 숙식해결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알아보고 준비하고 있다"며 "준비가 끝나는 대로 봉하마을로 달려가 추모벽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광주전남지역에서 시골마을에 무료벽화를 그려온 '아름다운 청년들'이 노 전 대통령의 숭고한 뜻을 희망으로 계승하겠다며 봉하마을로 찾아갈 예정이다. 이 청년들의 순박한 마음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질박한 미소로 답하는 듯하다.

<출처 :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귀향 이장의 승승장구 스토리'

<박원순의 희망탐사 46>


어머니에 곧잘 비유되는 고향은 넉넉하고 편안함 그것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묻어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언제든 꺼내시는 어머니처럼 언제든 날 받아줄만한 곳이 고향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귀향(歸鄕)은 쉽지 않다.

서울로 올라간 뒤 명절 때마다 한아름의 선물을 싣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다들 성공했다고 말을 했다. 그에 비해 조용히 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생활에서 실패해 내려온 것 아닌지 하는 의심이 눈길이 보내졌다.

마음속에 있는 고향, 그러나 다시 찾기 쉽지 않은 그 고향을 다시 찾은 사람들, 그리고 당당하게 귀향해 성공한 그들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귀향과 그리고 귀향에서의 성공.

한드미마을 정문찬 이장. ⓒ희망제작소
그 또한 귀향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귀향할 때부터 당당했고, 여전히 지금도 당당하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감동을 받으며 귀향을 생각하고 농촌운동을 계획한 사람, 돈을 벌면 고향에 가 내 뜻을 펼치리라 꿈을 품고 살아온 사람, 충북 단양군 한드미 마을의 정문찬 이장이다.

처음부터 농촌 부흥의 꿈을 안고 귀향한 그는 무진장 노력했다. 많은 시련과 오해를 이겨내고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의 성공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성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마을일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다. 수많은 강연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마을의 일에 몰두해야 한다면서 밖으로 다니기를 거부한다. 서울시장보다 작은 마을 이장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는 서울시장보다 더 훌륭한 마을 만들기 지도자이다.

귀향해서 이장까지 되다

그의 귀향은 두 번째다. 처음 귀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이다. 젊은 패기를 가득 안은 채 농촌운동을 하겠다는 포부로 고향을 찾았다. 30년 전인 1978년의 일이다. 양계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운동을 하려고 했지만 양계농사를 망치면서 생계를 위해 다시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처음 귀향 후 20년만인 1998년 고향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1998년도에 형님이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를 도와주기 위해 두 번째 귀향을 했어요. 형님의 그 사업이 잘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고향에 오기로 마음을 정하고, 부산 살림을 정리했기 때문에 고향에 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어요. 물론 집사람 반대도 심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고향을 다시 찾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었기에 내려올 수 있었어요. 집안 땅과 처갓집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이장도 맡았죠."

이미 고향에 오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자신만을 생각한 가벼운 결정은 아니었다. 고향인 이 마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기에 그는 이장을 수락했다. 그의 이장활동은 그의 패기와 젊음만큼이나 활발했다.

"행정관청의 사업을 따서 이런 저런 사업을 했어요. 예컨대, 주차장이 없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목적 광장을 만드는 일과 같은 것들이죠. 이런 일을 하면서 눈이 트였구요 산촌종합개발, 녹색농촌체험마을 등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관이 집행하고 우리가 관리하는 정도이긴 했지만 마을에서 어떤 사업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우리가 직접 운영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등 주체적인 측면도 없지 않아 좋은 경험이 됐어요.

알차게 진행을 하니까 주민들도 좋아했고 입소문도 타기 시작했죠. 행자부에서 실시하는 정보화마을에 대한 계획서도 냈는데 지정되었고 팜스테이마을 지정도 돈은 지원해 주지 않았지만 홍보가 잘되는 효과가 있었어요."

한드미 마을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5년 대통령의 마을 방문을 기념해서 만든 표지판. ⓒ희망제작소

















노무현 대통령까지 방문한 한드미 마을

한드미 마을에 대한 소문은 청와대 담도 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드미 마을을 찾았다.

대통령이 찾은 마을, 다른 사람들이 찾지 않을 리 만무한 일이다.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작은 마을이지만 2003년도에 2700명, 2004년도에 7000명, 대통령이 방문했던 2005년에는 1만7000명으로 방문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2만1000명이 한드미 마을을 찾아왔다. 올해 목표는 2만5000명이란다.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마을이기에 대통령이 찾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찾아왔어요. 여러 마을을 한 덩어리로 묶어 권역별로 개발하는 농촌마을종합 사업에도 선정이 됐죠. 더구나 우리 마을이 중심이 됐어요. 5개리(자연부락으로는 14개)가 모여서 하는 개발 사업이고, 총 36개의 농촌종합개발 사례 중에서 우리의 진척률이 제일 높습니다. 이 사업은 모델이 아직 없는데 우리가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 어떤 사업의 모델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은 당연하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발해야할지 많은 논의가 오갔다. 처음에는 무조건 아름답고 생태적으로라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이며 이 마을의 특색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컨설팅 하는 분들이 평가하는 점은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고, 참여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것을 높이 사더군요. 새로운 마을운동의 모델이라고. 그런 차원에서 견학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태마을이 미래의 방향이다-돌담 쌓고 잔디 덮고 전신주 묻는다

"농촌개발사업은 아직도 진행형이기에 할 일이 많습니다. 하수, 오폐수 처리도 새로 해야겠고 길도 정리중이죠. 방향은 여전히 생태마을이에요. 생태마을이 대안이고, 미래의 방향임은 너무 자명하니까. 어떻게 차별화해서 생태마을을 제대로 만들 것인가가 문제이죠.

시멘트 포장된 길을 걷어내고 잔디 까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새마을운동의 벽돌담을 모두 돌담으로 새로 만드는 것도 하고 있고요. 어떤 사람은 멀쩡한 것을 왜 뜯느냐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오폐수관을 묻고 나니 전신주가 눈에 걸려 전신주 지중화 사업도 진행하고 있죠. 돌담 새로 쌓는 것, 잔디 까는 것이 전주 때문에 뒤로 미루어졌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이미 첫발을 뗀 생태마을로의 변신. 그러나 정문찬 이장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농림부가 지원한 농가민박 시설을 설명하는 정문찬 이장. ⓒ희망제작소
"지금 우리 마을이 아직 친생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많이 달려왔지만 앞으로도 한참 달려가야 하죠. 지금까지 7년째 왔는데 마을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친환경농사도 처음에는 나만 지었지만 지금은 100% 모두 우렁이농법을 씁니다. 제초제도 거의 안하려고 노력하구요.

앞으로도 권역사업을 하는 가장 큰 목표가 이 골짜기 전체를 청정구역으로 만드는 것이에요. 이 계곡을 살리기 위해 오폐수가 유입되지 않도록 한 거죠. 우리 마을은 이미 했고 다른 동네도 진행할 겁니다. 한드미 마을이 여기까지 오는데 7년이 걸렸으니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죠."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지만, 어떤 일을 관철시키기 위해, 궁극적으로 삶을 누리기 위해 시간을 투입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드미 마을의 7년과 앞으로의 7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들처럼 말이다.

농촌종합개발사업에 몰두하다-5개리(14개 자연마을), 한곡(큰 골짜기, 소백골)을 바꾼다

들어가는 시간만큼 노력 또한 크고 깊다. 매주 한 번씩 농촌종합개발사업의 대상지역인 5개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권역회의를 한다. 하지만 의견 모으기가 쉽진 않다. 그의 말처럼 화투치다가 다투면 겨울 내내 경로당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시골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수고는 필수적이다.

"그나마 쉬웠던 것은 한드미 마을이 4년 정도 하면서 돈 버는 것을 봤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이 바뀌었고, 우리 마을을 좋은 모델로 생각한다는 거죠. 내가 권역사업을 제안했더니 쉽게 동의를 했지요. 그 사업이 확정되고 나서 5개 행정리에 설명을 하러 다녔습니다. 한번 다니면 매일 5일씩, 밤마다 5시간씩 서서 설명했어요. 5개리를 다 돌고 나니 몸살이 나더군요. 하지만 수고스럽지 않았어요.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길목이었으니까."

곧 각 마을에서 5명씩 참여하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장만 참여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을의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열린 구조로 이뤄졌다. 만나서 하나의 의제를 가지고 토론하고, 논의는 난상토론이 되지 않도록 생산적 논의를 유지해갔다. 그린투어리즘, 축산, 유통, 산림 등의 핵심적 이슈는 분과를 만들어 별도의 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를 안은 채 끌고 갈 수는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정문찬 이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선은 정책을 이끌어갈 이장, 반장들을 정확히 이해시키고, 그들이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와 더불어 교육을 병행했다. 교육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고 가장 정확한 길이기도 하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해서 시가현, 에치젠, 후쿠이, 도야마 등 일본의 산촌지역 견학 갖다오고 나더니 사람들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죠. 그 외에도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외부강사를 초청해 리더교육도 받았고 국내 선진지로서 횡성 한우마을, 밤두둑, 고라데이(골짜기)마을 등으로 견학도 갔어요. 주민동기화 교육이라 해서 권역의 310가구 767명을 농협강당을 빌려 6회에 걸쳐 1박2일씩 세 번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드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희망제작소
고스톱까지 치면서 마을 어른들과 어울린다.

교육의 중요성은 너무 잘 알지만, 교육이 효과를 거두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좋은 교육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교육을 들어야 한다. 바쁜 농사일에 꼬박꼬박 교육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문찬 이장이기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처음 교육을 하면 한 세 번 정도는 예의로 잘 나와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 안 나온다는 거지요. 그래서 방법을 강구했지요. 경로당, 회관 등을 겨울에 난방비 때문에 닫아놓고 있는데 쌀을 내놓았더니, 김치만 있으면 밥을 해서 거기서 먹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더군요. 나중에는 닭발, 닭똥집, 돼지고기들을 부탁해 가지고 와서 방송을 했어요. 먹을 게 있으니 다들 나오시죠. 나중에는 경로당에 나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어요.

나도 거기에서 끼어 한마디라도 거들기 위해 일부러 고스톱을 배웠습니다. 젊은 놈이 고스톱까지 쳐드리니 다들 좋아하시죠. 그러다가 그 자리를 통해서 회의하고, 교육하고 그러면서 이해를 얻어 갔습니다. 이제는 내가 한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해보라고들 하죠."

마을 사람들의 힘이 한데 모이니 일이 잘 될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이 올 때쯤에는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다 사업에 참여했단다. 다른 마을에서 깨기 힘든 기록이다. 절의 스님과 교회의 목사들이 한데 모여 마을일을 고민했으니 당연하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할 때가 제일 힘들다

하지만 모든 것이 승승장구,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고민이 있었다. 정 이장이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궁금했다.

"어려울 때야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죠.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건 마을 사람들이 마음에 없는 소리 할 땝니다. 시골의 모든 리더가 다 겪었을 법한 일이죠. 돈이 들어오면 얼마를 먹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배불리기 위해서 이런 사업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런 소리 듣고 일하고 싶겠어요? 그래도 일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몇 차례 그런 일을 겪으면서 보니 스스로만 깨끗하면 한 달이면 진실이 밝혀지게 되더라고요. 나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지금은 거의 초월하고 살아요."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가장 힘들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결국 초월할 때까지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그는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고 원하는 사업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왔다. 주민간의 관계만 회복하면 관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민들이 밀어주면 저절로 해결되기 마련이었으니까. 정 이장은 이 모든 것이 복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복은 절로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갈고 닦아 만든 행운이다.
한드미마을의 교육시설 - 교육의 힘이 한드미 마을의 힘이다. ⓒ희망제작소
















그 다음 꿈은?

현재 하고 있는 농촌종합개발계획을 끝내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앞으로의 꿈인지를 물어보았다. 단연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단지 지금의 일을 더 충실히 하련다는 뜻만 전한다.

"다른 꿈은 전혀 없어요. 권역사업도 아직 멀었는데요. 뭔가 꼬투리를 잡기 위해 나온 것 같이 철옹성 같던 분들이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견학을 다녀오고 서로 대화하면서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지금은 알 수 있죠. 그런 일들이 저는 너무 뿌듯해요. 그래서 다른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5개리의 5명씩 함께 모여 하다 보니 신도 나고, 과거에 한드미 마을의 경우에는 나 혼자 어렵게 했는데 30여 명이 권역 일을 함께 하다 보니 성공도 확신합니다. 저는 주민들과 이렇게 회의를 통해 뜻을 합하고 하는 일이 너무 좋아요."

신나서 하는 일이다보니 결실도 크다. 농사짓는 방법에서부터 산림개발의 방식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군에서도 국유림, 군유림도 임대해 주겠다는 화답이 왔다.

한드미 마을이 벤치마킹 대상이 되듯 이 마을을 가꾸어놓은 정 이장에게도 외부 강연요청이 많다. 하지만 마을일에 몰두해야한다는 생각에 강연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정 이장이다. 오히려 필요하다면 마을을 와주길 요청한다. 자기의 말보다는 한번 마을을 보는 것이 더 좋으리라는 판단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마을이 더 알려질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생각의 뒷 편에는 조금의 강연료라도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괜히 조금의 강연료 가지고 오해도 받는다. 리더의 힘이 크다는 것을 정문찬 이장을 보며 새삼 느낀다.

<출처 : 원순닷컴(http://wonsoon.com)>